LIN NEWS
법인소식
  • Home
  • /
  • 법인소식
  • /
  • 뉴스레터
뉴스레터
저작권의 권리소진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범위(국제/국내)
2024.04.26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병행수입 하여도 될까? 저작권의 권리소진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범위(국제/국내) 
-만화캐릭터 블록 판결(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0도17863 판결)을 통하여
 
1. 들어가며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입하실 때 “병행수입 正品”이라는 표현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병행수입이란 국내 사업자가 상표권자나 전용사용권자 등의 허락을 받지 않고 상표권자 등이 지정한 국내의 판매처가 아니라 해외의 대리점 등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병행수입은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직구”(해외 직접 구매)를 하지 않고도 국내에서 진정상품을 염가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지만, 당해 상품의 상표권자나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국내 유통을 통제할 수 없고 국내 시장을 위하여 책정한 가격이 무너져 국가별 가격 차별화 정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법적 관점에서는, 해당 병행수입이 상표권이나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지가 문제됩니다. 이는 상품이 권리자에 의하여 한 번 판매되었다면 이로써 지적재산권은 소진되는 것이고 따라서 최초 판매 이후에 이뤄지는 양도 등에 대해서는 규제할 수 없다는 이른바 ‘권리소진원칙’ 또는 ‘최초판매이론’이 국제적으로도 적용되는지, 즉 국내에서의 판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판매에 의해서도 국내에서의 권리가 소진되는 것인지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다수의 판결로 국제적 권리소진의 법리가 정립된 상표권의 경우와 달리, 저작권의 경우 주요 판결이 없이 학술적 논의만 이루어졌고 관련하여 미국 등 해외의 판결이 참고 사례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23년 12월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저작물의 병행수입이 배포권을 침해하는지에 관한 판단이 이루어졌고(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0도17863 판결, 이하 “본건 판결”이라 합니다), 저작권의 국제적 권리소진에 대한 우리 법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하에서는 먼저 저작권의 국제적 권리소진에 대한 기본 개념에 대해 말씀드리고, 미국의 판결 2건을 소개한 후, 전술한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의한 권리소진과 그 지리적 범위
 
가. 저작권자의 배포권과 이에 대한 제한: ‘권리소진원칙’ 

저작권자는 저작물에 대한 ‘배포권’, 즉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을 공중에게 양도하거나 대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저작권법 제20조 본문). 단,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배포권이 제한됩니다(동조 단서).
 
위 저작권법 제20조 단서는 이는 이른바 ‘권리소진원칙(exhaustion of rights)’ 내지 ‘최초판매이론(first sale doctrine)’을 법제화한 것입니다. 동 원칙은 저작권자의 배포권은 저작물에 대한 최초의 판매가 이루어진 후에는 소진되고, 따라서 최초 판매 후에 이루어지는 배포에 대해서는 (계약상 제한을 두는 것과는 별개로) 저작권법적으로는 제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저작권자와 당해 물건의 소유권자(혹은 일반 소비자, 유통업자 등) 간의 이익을 조율하기 위한 것으로, 저작권자가 최초의 판매 당시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나. 권리소진의 지리적 범위: 국제소진설 vs 국내소진설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따른 권리소진의 지리적 범위, 즉 거래 제공이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이루어진 경우에도 국내의 배포권이 소진되는지에 대해서는 학설의 대립이 있습니다.
 
‘국내소진설’은 국내에서의 거래 제공에 의해서만 국내 배포권이 소진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저작권의 보호를 보다 중시하는 견해입니다. 이와 달리 ‘국제소진설’은 권리소진이 국제적으로도 이루어진다고 보아 국외에서의 거래 제공에 의해서도 국내 배포권이 소진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서, 일반 소비자의 이익과 거래의 안전, 자유로운 유통을 중시합니다.

3. 권리소진의 지리적 범위에 관한 미국의 판결례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본건 판결 전까지 저작권 권리소진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논의에서는 주로 미국 판결 등이 다루어졌는바, 아래에서는 저작권의 권리소진과 관련한 미국 저작권법 조항 및 미국의 대표적인 판결 2건에 대해 소개드립니다.
 
가. 미국 저작권법상 권리소진 조항 

미국의 권리소진 조항은 우리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으므로 미국 판결을 검토할 때에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미국 저작권법(17 U.S.C.)상 권리소진에 관한 조항인 109(a)는, 저작권자의 배포권에도 불구하고 “본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작된 복제물(…)의 소유권자(…)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도 그 복제물을 판매 또는 처분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17 U.S.C. 109(a)
 Notwithstanding the provisions of section 106(3), the owner of a particular copy or phonorecord lawfully made under this title, or any person authorized by such owner, is entitled, without the authority of the copyright owner, to sell or otherwise dispose of the possession of that copy or phonorecord.

우리 저작권법이 권리소진의 요건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거래에 제공된 경우”로 정한 것과 달리, 미국 저작권법은 “본 법[즉, 미국 저작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작(lawfully made under this title)”되었을 것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문언상 요건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권리소진의 지리적 범위에 관한 미국 법원의 판례에서는, 위 권리소진 조항 중 “미국 저작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 해석이 주된 쟁점이 되었습니다.
 
나. 오메가(Omega) 사건 – 국내소진설적 입장 

미연방 대법원은 퀄리티킹 사건{Quality King Distributors Inc. v. L'anza Research International Inc., 523 U.S. 135 (1998)}에서,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미국에서’ 제작되어 국외로 수출되었던 물건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다시 미국으로 수입된 경우에 이는 “미국 저작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작”된 물건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미국 바깥’에서 제작된 물건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미국 내로 수입되었다면 이 물건은 “미국 저작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작”된 것일까요? 오메가 사건{Omega S. A. v. Costco Wholesale Corp., 541 F.3d 982 (9th Cir. 2008)}에서 미연방 항소법원은 이러한 경우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국내에서 이미 판매된 경우가 아닌 한) 권리소진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명품 시계 제조업체인 오메가(Omega)는 스위스에서 시계를 제조하여, 각국의 공식 판매점을 통해 시계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메가는 오메가의 허락 없이 시계가 수입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하여, “Omega Globe”라는 저작물을 시계의 뒷면에 조그맣게 새겨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유통업자인 코스트코(Costco)는 해외의 판매점에서 수입된 시계를 매입하여 이를 미국 내에서 판매하였습니다.
 
오메가는 시계에 각인된 작은 “Omega Globe” 디자인을 근거로 코스트코의 시계 판매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였고, 코스트코는 이미 한 번 판매되었던 시계임을 들어 권리소진의 항변을 하였습니다.
 
미연방 항소법원은 “미국 저작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작된”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미국 내에서 제조 또는 판매된”으로 해석하여, 오메가의 시계는 미국이 아닌 스위스에서 제조되었고, 미국 내에서는 오메가의 허락을 받아 판매된 적이 없으므로 코스트코의 권리소진 항변을 배척하고 오메가에 대한 배포권 침해를 인정하였습니다. 위 법원은 이러한 해석의 근거로, 국제소진설적 해석은 허용되는 범위를 넘는 저작권법의 역외적용을 인정하는 것이고, 저작권자의 허락 없는 수입을 금지하는 미국 저작권법 조항을 사실상 사문화하는 것이라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래 커트생(Kirtsaeng) 사건 전까지, 해외에서 제조된 후 허락 없이 국내에 수입된 물품의 경우에 대해 미국의 하급심 법원의 판단은 주로 위 오메가 사건과 같이 저작권의 권리소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입장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다. 커트생(Kirtsaeng) 사건 – 국제소진설적 입장

미연방 대법원은 2013년경 커트생 판결{Kirtsaeng v. John Wiley & Sons, Inc., 568 U.S. 519 (2013)}을 통해 해외에서 제조된 물건을 수입한 경우에도 권리소진이 이루어진다고 판시하여 기존 하급심 경향과 달리 국제소진설적 입장을 정립하였습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존와일리앤손즈(John Wiley & Sons, 이하 “와일리”)는 대학교 교과서를 만드는 회사로서, 각 국가별로 물가 등 시장 수요에 맞추어 교과서의 품질과 가격을 달리하여 제조 및 판매하였습니다. 예컨대 와일리는 미국에서는 고급 종이로 교과서를 만들어 고가에 판매하였지만, 태국에서는 태국 자회사를 통해 교과서를 저품질의 종이로 만들어 염가에 판매하였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태국 출신의 유학생 커트생은 학비를 조달할 생각으로, 태국에 있던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태국에서 염가에 판매되는 와일리의 교과서를 사들여 이를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판매함으로써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와일리는 커트생의 병행수입 및 판매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였고, 커트생은 권리소진의 항변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오메가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권리소진 조항에서 “미국 저작권법에 따라(under) 합법적으로 제작된”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즉 위 요건이 지리적 범위를 제한하는 뜻인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와일리는 오메가 판결과 같이 위 요건을 ‘미국 저작권법이 적용되는 곳, 즉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커트생은 미국 저작권법의 ‘내용에 좇아(in accordance with)’ 합법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면 국내인지 국외인지를 불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미연방 대법원은 권리소진 조항의 문언, 법체계, 보통법(common law) 및 조문의 입법 연혁에 비추어 커트생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즉 권리소진에는 지리적 범위의 제한이 없다고 판단하였는데, 이러한 판단에는 권리소진 원칙의 보호에 크게 의존하는 서점, 도서관, 박물관, 유통업자의 이익에 대한 고려 또한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만약 와일리의 해석과 같이 권리소진이 국내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 경우, 도서관은 외국에서 출판된 도서의 경우 일일이 권리자에게 허락을 구해야 할 것이고, 중고서적 등의 판매는 사실상 곤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라. 시사점

앞서 설명드린 미국 판결의 경우 미국 권리소진 조항의 해석이 주된 쟁점이 되었던 것이고, 우리나라와 미국은 권리소진 조항의 문언은 물론, 저작권법 등 법체계가 상이하므로 권리소진의 지리적 범위에 관한 미국 판결의 판단을 우리 법의 경우에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타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권리소진 조항은 동일한 권리소진의 원칙을 법제화한 것으로서 요건의 표현상 차이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같고, 두 판결에는 단지 문언 자체에 대한 해석 외에도 저작권자와 일반 소비자, 유통업자 사이의 이해 조율에 관한 고려 역시 직접 내지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권리소진 조항의 지리적 범위에 관하여 국제소진설적 입장을 택한 미국의 판결은 우리 저작권법의 해석 내지 적용의 문제에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겠습니다.
 
4. 권리소진의 지리적 범위에 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 – 본건 판결(2020도17863)
 
우리 대법원은 본건 판결에서 저작물이 해외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도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따라 배포권이 소진된다고 하여 국제소진설적 입장을 표하였는바, 아래와 같이 살핍니다.
 
가. 사실관계

본건 판결에서는 캐릭터를 이용한 장난감 블록의 병행수입이 저작권자의 배포권을 침해하는 저작권침해죄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본의 A사는 자신이 저작권을 보유한 한 만화 캐릭터(“도라에몽”, 이하 “본건 캐릭터”)에 대하여 중국의 B사에게 중국 내 상품화권을 부여하였고, 중국 B사는 다시 중국 C사에게 본건 캐릭터를 이용한 미니블럭 제품(이하 “본건 제품”)의 중국 내 판매권을 위임하였습니다. 한편, 일본 A사는 한국 내 상품화권은 한국의 D사에게 부여하였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B사 (중국 내 상품화권자)
              ↓판매권 위임
                                      C사
D사 (한국 내 상품화권자) A사 (저작권자)
 
피고인은 저작권자인 일본의 A사나 국내 상품화권자인 한국의 D사로부터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중국의 C사로부터 본건 제품을 수입하여 국내에 유통하였고, 본건 제품을 포함한 수입 장난감 블록 제품의 판매가 배포권을 침해한다는 사유로 저작권침해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나. 쟁점 

이 사건에서의 핵심 쟁점은 권리소진 조항인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 따라 저작권자의 본건 제품에 대한 배포권이 소진되는지 여부였으며, 구체적으로는 ① 이 사건의 경우에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 및 ② 본건 제품이 제20조 단서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거래에 제공된 것인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다. 하급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1. 27. 선고 2019노3248 판결)의 판단  

이 사건의 하급심은 ① 국내 독점수입권자의 허락 없이 제3의 유통경로로 상품을 수입하는 행위인 병행수입의 경우에까지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된다고 볼 수 없고, ② 설령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중국 B사에게 중국 내 상품화권을, 한국 D사에게 한국 내 상품화권을 부여한 A사의 의사에 비추어 본건 제품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거래에 제공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의 권리소진 주장을 배척하고 저작권침해죄를 인정하였습니다.

라. 대법원의 판단  

① 대법원은 먼저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이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여 저작권의 국제적 권리소진을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의 경우 본건 제품이 중국 내에서 판매 등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수입되어 국내에서 양수가 이루어졌으므로, 중국이 아니라 국내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로 보았고, (결국 국제적 권리소진 자체의 인정 여부와는 무관하게) 항소심과 달리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되는 사안임을 인정하였습니다. 
 
② 다음으로 본건 제품의 거래 제공이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와 같이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에 대해, 중국 C사가 B사로부터 이용허락을 받은 범위인 중국을 벗어나 피고인에게 직접 본건 제품을 판매한 것은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지 아니한 것이라고 보아,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저작권자의 대한민국 내 배포권이 소진되지 아니하였다고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마. 시사점  

본건 판결은 저작권의 경우에도 국제적 권리소진을 인정하였다는 의의를 가집니다. 더불어, 본건 판결은 아래와 같이 권리소진의 요건 판단에 대해서도 몇 가지 시사하는 점이 있습니다.
 
(1) 국제적 권리소진의 인정

비록 국제적 권리소진의 인부는 쟁점이 되지 아니하여 방론에 불과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본건 판결을 통해 우리 대법원이 저작권에서의 국제적 권리소진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거래의 제공이 이루어진 곳이 국내이든 국외이든 상관없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저작물의 원본 혹은 복제물이 한 번 거래에 제공되었다면 원칙적으로 국경을 불문하고 자유로운 거래와 유통이 가능하게 됩니다.
 
권리소진 조항의 취지가 저작권자에 대하여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거래의 자유를 도모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거래의 제공지가 어디인지에 따라 권리소진 여부를 기계적으로 결정하기보다, 본건 판결과 같이 거래 제공지가 국내인지 국외인지는 불문하되 다만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에 따른 거래의 제공이 있었는지만을 기준으로 권리소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동 조항의 취지에 보다 부합하는 해석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요건의 판단

본건 판결은 이와 같이 권리소진이 발생하는 지리적 범위 자체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아니하되, 당해 거래의 제공이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졌는지 여부의 판단을 통하여 저작권자의 권익과 자유로운 거래 간의 균형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저작권자인 일본의 A사가 중국의 B사에게 “중국 내” 판매만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B사로부터 판매권을 위임받은 C사가 한국에 본건 제품을 직접 수출한 것은 저작권자의 허락 범위를 초과한 것이 됩니다. 만약 이와 달리 A사가 B사에게 판매지역을 제한하지 않았다면, C사가 한국으로 본건 제품을 수출한 행위는 A사의 허락 범위 내로서 권리소진의 요건이 충족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서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의 범위가 무엇인지가 불명확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법원에서는 이용허락 계약서, 거래관행 기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허락의 범위를 해석할 것이지만, 이 경우 수범자의 입장에서는 특정 병행수입행위가 배포권의 침해를 구성하는지를 예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예컨대, 본건 판결은 소유권 또는 처분권의 이전이 이루어진 장소를 거래 제공지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 본건 제품의 소유권이 피고인에게 이전된 것은 국내였지만, 피고인과 중국 C사가 합의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중국 내에서 소유권 또는 처분권이 이전되도록 거래를 구성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A사가 중국 내 판매만을 허용한 상황에서, C사가 ‘한국으로 수입하려는’ 의도가 명확한 자에게 ‘중국 내’에서 판매하는 것이 과연 저작권자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이에 본건 판결과 같이 국제적 권리소진이 인정되더라도 진정상품을 병행수입할 시에는 저작재산권자가 이용을 허락한 범위가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3) “판매 등 거래 제공”의 판단

저작권자인 A사가 중국 B사의 판매지역을 중국으로 제한하였더라도 C사가 중국 내에서 제3자에게 판매하였고 피고인이 그 제3자로부터 이를 구매한 경우였다면 배포권의 권리소진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또는 본건 제품이 B사에서 C사로 이전된 것이 “판매 등 거래 제공”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이로써 배포권의 소진이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본건 판결은 B사와 C사 사이에서 거래 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전제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양 회사 간의 법률관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아니하지만, 본건 판결에 따르면 중국 B사는 중국 C사에게 “판매권을 위임”하였는바, 표현상 이는 일응 우리 상법상 위탁매매를 하였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상법상 위탁매매인은 위탁자로부터 물건 등의 매매를 위탁받아, 자신의 명의로 거래하되(매매계약 체결 등) 경제적 손익은 위탁자의 계산으로 매매를 하는 자를 말합니다(상법 제101조). 이때, 위탁매매인이 위탁자로부터 받은 물건은 위탁매매인과 위탁자 사이에서는 위탁자의 소유로 봅니다(상법 제103조).
 
위탁자가 위탁매매인에게 위탁매매 상품을 이전한 것을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상 “판매 등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위탁자의 의사에 의하여 물건이 인도되었다는 점, 상품을 매수하는 제3자는 위탁자가 아닌 위탁매매인과 거래하는 것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 이를 거래 제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상법 제103조에 따라 위탁매매인과 위탁자 사이에서는 물건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이 아니고, 저작재산권자가 위탁매매인에게 물건의 매매를 위탁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판매가 되기 전까지는 매매의 위탁 그 자체로써 저작재산권자에게 어떠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저작권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전제로 하는 권리소진 조항의 취지를 고려하면 위탁매매를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거래 제공”에서 배제한 본건 판결은 타당하다고 판단됩니다.

5. 맺으며
 
이상과 같이 우리 대법원은 저작권에 대해서도 상표권 및 미국 판결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여 국제적 권리소진을 인정하는 입장을 표시하였습니다. 다만, 이는 병행수입 자체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병행수입의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은 거래 제공”이 있다면 이를 허용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저작물의 거래가 국제적으로 활발한 현재, 저작권자와 유통업자 모두 불법 복제품만이 아니라 진정상품의 병행수입 또한 저작권의 침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과 국제적 권리소진에 관한 우리 법과 법원의 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거래 시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컨대, 저작권자의 경우 국외에서의 이용허락이 국내의 배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국외의 이용허락 계약 시 그 판매의 지역적 범위에 대한 제한을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고, 유통업자의 경우 당해 제품이 저작권자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 판매되는 것인지 혹은 허락한 범위 내에서 판매된 사실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하겠습니다.
 
* * *
 
상기 내용에 관해 문의사항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희 법무법인 린의 IP팀 전응준 변호사(Tel. 02-3477-8695)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 분야
TOP 버튼 모바일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