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VC) 및 기업인수합병(M&A) 시장에서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 투자자와 피투자회사 및 그 대표이사가 주요 당사자로서 상호 간 합의된 내용으로 투자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특히 지분투자의 경우 투자계약은 지분 규모에 따라 투자자와 피투자회사의 대표이사 또는 기존 주주들을 포함하여 주주 간 계약 체결되고, 거래구조에 따라 신주인수계약, 구주 양수도계약 등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우에 따라 후자에 주주 간 계약 내용까지 포함되어 체결하기도 한다.
투자계약에는 구체적인 투자조건, 주주 간 합의사항이 포함되는데 이 중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사항으로서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사항에 관하여는 그 중요도에 따라 투자자의 '사전동의권' 대상으로 규정하고, 만일 이를 위반하는 경우 투자자는 피투자회사 또는 그 대표이사에 대하여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다시 사 가도록 하는 주식매수청구권, 위약벌과 같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와 같은 투자 계약상 투자자의 사전동의권과 관련하여, 최근 VC·M&A 투자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어 이를 소개한다. 2023년 7월 13일에 선고된 이른바 ‘주주평등의 원칙’에 관한 판례로서 향후 투자기업의 경영환경 및 후속투자 유치 등 투자업계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하급심 "사전동의권은 '우월적 권리'…주주평등 원칙 위배"
이 사건 원고는 투자자이고, 피고 1은 주식회사 A, 피고 2는 주식회사 A의 대표이사로, 원고는 피고 1 회사에 상환전환우선주(RCPS) 지분투자를 위하여 피고 1 회사 및 피고 2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하였다.
해당 계약에 의하면, 만일 피고 1 회사가 원고의 주당 인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경우 이는 원고의 사전 서면동의 대상에 해당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원고는 상환전환우선주 조기상환권 행사, 위약벌 지급 등을 청구할 수 있고 피고 1 회사는 이에 응해야 하며 피고 2는 대표이사로서 피고 1 회사의 의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부담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피고 1 회사는 본건 지분투자 이후 원고의 주당 인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하면서 원고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지 아니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 1 회사 및 피고 2에 대하여 계약에 따른 상환전환우선주의 조기상환 및 위약벌 청구를 한 사안이다.
이 사안에 관하여 당초 원심은, 피고 1 회사가 원고에게 회사의 주요경영사항에 관한 사전동의권 등을 부여한 약정은 다른 주주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적 권리를 마찬가지로 주주 지위를 가진 것에 불과한 원고에게만 부여한 것으로 이는 ‘주주평등 원칙’에 반하여 무효라고 판단하였다.(서울고법 2021. 10. 28. 선고 2020나2049059 판결)
■ 대법, 원심 판단 뒤집고 '차등적 취급 정당화' 기준 제시
이에 원고는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며 대법원은 주주평등 원칙에 관하여 원심과 다른 판단을 하였다.(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1다293213 판결)
대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이란 주주는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반하여 회사가 일부 주주에 대하여만 우월한 권리 또는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다만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여 다른 주주들과 다르게 대우하는 경우에도 법률이 허용하는 절차와 방식을 따르거나 그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위에서 ‘차등적 취급을 허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사안의 구체적 내용, 경위와 목적, 전체 이익을 위해 필요하였는지 여부와 그 정도, 일부 주주에 대한 차등적 취급이 관계법령에 근거를 두었는지 아니면 주주로서 본질적 지위를 부정하는지 여부, 종국적으로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비롯하여 불이익을 입게 되는 주주의 동의 여부, 그 밖에 회사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보아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사안에서는, 회사가 신주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부 주주에게만 사전동의권을 부여한 것은 주주를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맞으나, 다만 ⑴ 해당주주가 납입하는 신주인수대금이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자금이었고 ⑵ 투자유치를 위해 이와 같이 일부주주에게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하였으며 ⑶ 다른 주주가 실질적, 직접적 손해나 불이익을 입지 않고 오히려 일부주주에게 회사의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다른 주주와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 등의 사정이 있다면 이는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으로서 따라서 일부주주에게 부여된 사전동의권은 허용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위와 같이 사전동의권이 허용되는 경우라면, 그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는 약정을 함께 체결하였고 그 약정이 사전동의권 위반으로 해당주주가 입은 손해를 배상 또는 전보하고 의무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는 회사와 주주 사이에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액의 예정을 약정한 것으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하고, 이를 두고 일부주주에 대하여 투하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
종래 VC·M&A 투자 계약상 투자자에게 부여된 피투자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관한 사전동의권 조항 및 이를 위반하는 경우의 손해배상 약정에 대하여, 뒤늦게 이를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투자 이후 피투자회사와 투자자간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여러 혼란이 초래되어왔다.
특히 투자자로서는, 당사자들간 신중한 의사판단을 거쳐 체결된 투자 계약상 투자자의 권리가 침해당할 위험이 있어 투자규모를 줄이거나 투자의사 결정 자체를 꺼리게 되고 이는 투자시장의 위축을 불러오는 부정적 요인으로도 작용하였다.
그러나 최근 위 대법원 판결은 대규모 자금 등을 집행하는 일부 소수주주에게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감시, 감독 등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하여 주주평등의 원칙이라는 엄격한 잣대만을 내세워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이는 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계약준수원칙을 다시금 확인한 것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실무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계약이 이행될 것이라는 신뢰를 높여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유인이 올라가고 이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여 비즈니스를 지속 영위할 필요가 있는 피투자회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판결로 생각된다.
다만, 대법원 판결에 의하더라도 투자 계약상 투자자의 사전동의권 및 그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약정이 언제나 주주평등의 원칙에 우선하여 유효하다는 것은 아니며 특정주주에 대한 차등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위와 같은 약정이 유효하다는 것이므로, VC·M&A 투자계약 작성 시 투자자와 피투자회사 모두 추후 계약조항이 무효로 판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보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계약내용을 구성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할 것이다.
관련 기사는 아래 기사 원문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국경제
원문보기▼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5051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