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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베이스의 보호 및 전망(판례 평석)
2024.09.26
대상판결: 대법원 2024. 4. 16. 선고 2023도17354 판결(건설공사 원가 DB 사안)
 
요약
 
사실관계: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가 제작한 ‘EMS7’이라는 프로그램을 모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한편, 피해자의 허락없이 피해자의 ‘EMS7’ 프로그램의 데이터베이스를 복제한 후 2018년 1월부터 2월경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무단복제된 데이터베이스의 6개월 사용권을 12만원에 판매하였다.
 
판결내용: 원심은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의 일부 개별 소재가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는 이러한 공공데이터와 함께 별도로 유로 구매한 데이터를 ‘자재’ 및 ‘일위대가’ 항목으로 분류 및 편집한 후 표준 품셈 관련 해석을 거쳐 체계적으로 배열하여 제작된 것이므로,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의 상당한 부분을 그대로 복제한 피고인은 피해자의 데이터베이스제작자로서의 권리(복제권)를 침해하였다고 보았고,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평가: 대상판결은 법리적으로 보면 종전에 있었던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도1533 판결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위 2022년 대법원 판결은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투자를 보호하면서도 정보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정보공유의 사회적 요청도 고려한 판결로 이해된다. 이러한 2022년 대법원 판결과 달리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는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를 복제하고 이를 1/10 이하 가격으로 판매하여 피해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는 사안이었다. 대상판결은 정보공유, 경쟁제한 방지라는 2022년 판결의 고려사항이 발견되기 어려웠던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1. 사건의 개요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가 제작한 ‘EMS7’이라는 프로그램(이하 ‘피해자 프로그램’이라고 한다)을 모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한편, 피해자의 허락없이 피해자의 ‘EMS7’ 프로그램의 데이터베이스(이하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라고 한다)를 복제한 후 2018년 1월부터 2월경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무단복제된 데이터베이스의 6개월 사용권을 12만원에 판매하였다.
 
이에 대해 검사는 ① 피고인은 영리 목적으로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를 무단 복제하였으므로 피해자의 데이터베이스제작자 권리(그 중 복제권)를 침해하였고 ② 피해자 프로그램의 기능과 인터페이스와 유사하게 피고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의 컴퓨터프로그램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사실로 공소를 제기하였다.
 
2. 쟁점별 판단과 이유

2.1. 데이터베이스제작자 권리 침해죄 부분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 침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① 피해자 데이터베이스 및 피해자가 각각 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 및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이어야 하고, ③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이 복제·배포·방송·전송되어야 한다.
 
2.1.1. 데이터베이스 및 데이터베이스제작자 해당 여부

피해자의 데이터베이스는 크게 ‘자재’와 ‘일위대가(一位代價)’로 구성되어 있다. ‘자재’는 건설공사에서 사용되는 모든 재료비, 인건비, 경비성 품목 등을 지칭하고, ‘일위대가’는 특정 공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자재, 노무, 장비 등의 단위 공사별 필요 수량, 소요 시간, 공사 조건 등을 고려하여 보수 및 사용 대금을 산출한 것으로서 간단히 말하면 단위당 가격을 의미한다.
 
피해자 데이터베이스 중 ‘자재’ 부분의 데이터는 ① 조달청에서 공표하는 가격, ② 대한건설협회의 거래가격, ③ 사단법인 한국응용통계연구원의 물가정보 세 가지를 매월 업데이트한 것이고 그중 ②, ③은 유료로 구독한 데이터이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피해자는 건축, 토목, 기계, 전기 등 각 분야의 전문직원을 고용하였다.
 
‘일위대가’ 부분의 데이터는 국토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 표준품셈 자료’에 기초하여 작성된다. 그런데 일위대가는 표준품셈 자료를 그대로 옮겨서는 작성이 불가능하고 전문직원이 표준품셈 자료를 조합, 해석,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표준품셈 자료를 해석한 수식과 숫자 및 그 외 공사원가 계산을 위해 수집된 각종 자료들을 입력하여 ‘일위대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원심은 이와 같은 사정을 들어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는 수 만개의 소재를 체계적으로 배열 또는 구성한 편집물로서 피해자 프로그램을 통해 개별 소재에 접근 및 검색할 수 있으므로 ‘데이터베이스’에 해당하고, 피해자는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하면서 인적 또는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하였으므로 ‘데이터베이스제작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일반 공중에 공개되는 조달청 공표 가격, 표준품셈 자료 등의 공공데이터도 피해자의 해석을 거쳐 체계적으로 배열되었으므로 데이터베이스제작자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보호받는 ‘데이터베이스’의 구성요소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을 유지하였다.
 
2.1.2.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의 상당 부분 복제 여부

피고인측은 수사 당시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를 그대로 복제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감정 결과 피고인 데이터베이스는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와 ‘테이블 이름 유사도 90%’, 스키마 유사도 98.2%‘, ’데이터 유사도 90.4%‘에 이르고,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의 ’오타, 오기, 중복 기재된 부분, 특정 업체로부터 피해자 회사만 제공받은 데이터‘도 그대로 포함하고 있다. 피고인측의 진술, 공통 오류의 존재, 데이터 유사도가 90%가 넘고 테이블 이름 및 데이터베이스 스키마의 유사도도 매우 높은 것으로 보아, 피고인은 피해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거의 그대로 복제한 것으로 보인다. 원심은 피고인이 양적 또는 질적으로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의 상당한 부분을 복제하여 피해자의 데이터베이스제작자로서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았고,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 판단을 유지하였다.
 
2.2. 컴퓨터프로그램저작권 침해죄 부분

이 부분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피해자 프로그램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고 사용자에게 피해자 프로그램과 전체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인상을 주도록 그 유저인터페이스를 구성하여 피고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피해자 프로그램을 복제한 사실’이고, 피해자 프로그램의 소소코드를 복제하였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원심은, 피고인 프로그램이 기능이나 화면구성에서 피해자 프로그램과 유사한 사실은 인정되나 공사원가 프로그램은 조달청의 통합공사원가계산프로그램 및 매뉴얼에 맞추어 표준품셈 등의 데이터를 입력하여 계산하는 프로그램이므로 피해자의 프로그램의 기능, 메뉴 구성, 인터페이스 등에 창작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아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무죄 판단에 대한 검사의 상고가 없어서 이 부분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없다.
 
3. EU의 데이터베이스 보호 정책의 흐름

저작권법의 데이터베이스제작자 권리는 EU의 1996년 데이터베이스 보호 지침을 참고하여 2003년에 도입되었다. 데이터베이스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창작성없는 데이터베이스도 독점배타권으로 보호하려는 것이 데이터베이스제작자 권리 보호의 취지이다. EU 집행위는 2005년, 2018년 두 번에 걸쳐 위 데이터베이스 보호 지침에 대한 평가를 하였는데, 두 번의 평가 모두 위 지침이 유럽 데이터베이스 산업의 성장이나 데이터베이스 생산의 증가에 기여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현 상태의 이해관계자의 이익균형을 위해 데이터베이스 보호 지침을 폐지·개정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소극적인 결론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EU는 이용자의 데이터 접근권 및 제3자와의 데이터 공유권 확보를 위해 Data Act(2024년1월11일 시행)를 제정하여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일부 제한하였다. 즉 EU Data Act 제43조는 연결된 상품(connected product) 또는 관련 서비스(related service)에서 취득되거나 생성되는 데이터에 대해서는 1996년 데이터베이스 보호 지침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는 IoT 환경에서 서비스 이용 과정 중 센서 및 기계에 의해 생성되는 데이터에 대한 서비스 이용자의 접근권 및 이를 제3자(주로 중소기업인 애프터마켓 사업자)와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또한 EU 사법재판소(CJEU)는 데이터베이스 침해 입증에 관하여 권리자의 입증 부담을 가중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2021.6.3. CV Online Latvia v. Melons, Case C-762/19). 위 판결에서 CJEU는 추출(extraction)과 재사용(re-utilisation)이라는 데이터베이스 침해는 그러한 침해행위가 데이터베이스제작자에게 투자회수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박탈하는 경우에 성립한다고 보았다. 위 판결에 따르면 원고 데이터베이스제작자는 추가적으로 피고의 침해행위가 투하자본 회수라는 원고의 경제적 이익을 박탈하는 점을 입증하여야 한다. 위 판결은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가 데이터에 대한 이용자 및 제3자(경쟁자)의 접근권 및 이용권과 적절하게 조화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는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데이터 독점을 회피하기 위해 이와 같은 경쟁법적 관점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 EU 데이터베이스 정책의 경향이라고 생각된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법리적으로 보면 종전에 있었던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도1533 판결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위 2022년 판결은 ① 피고인측이 피해자 회사의 API 서버로부터 수집한 정보들은 피해자 회사의 숙박업소 관련 데이터베이스의 일부에 해당한다. ② 위 정보들은 이미 상당히 알려진 정보로서 그 수집에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들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거나 이미 공개되어 있어 이 사건 앱을 통해서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고, 데이터베이스의 갱신 등에 관한 자료가 없다. ③ 이러한 피고인측의 데이터베이스 복제가 피해자 회사의 해당 데이터베이스의 통상적인 이용과 충돌하거나 피해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복제권) 침해를 부정하여 대상판결과 결론을 달리하였다. 위 2022년 판결은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투자를 보호하면서도 정보화 사회에서 요구되는 정보공유의 사회적 요청도 고려한 판결로 이해된다. 정보공유, 경쟁제한 방지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최근 EU 데이터베이스 정책과 유사한 흐름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대상판결의 의의를 찾기 위해서는 위 2022년 판결의 무죄 이유를 대비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도 공공데이터의 이용이 문제되었기 때문에 공개된 숙박업소 정보가 수집된 위 2022년 판결의 사안과 유사한 점이 있고 경쟁법적 관점에서도 후발주자인 피고인이 경쟁시장의 선발주자인 피해자의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하였다는 유사한 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의 핵심인 ‘자재’ 및 ‘일위대가’ 부분을 거의 전부 복제하여 판매하였다는 점, 피해자 데이터베이스에 공공데이터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자료 수집 후 전문직원이 별도로 자료를 조합, 해석 적용하는 작업이 있었고 일부 자료는 유료로 구입하여 업데이트하는 등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인적 또는 물적인 상당한 투자가 있었다는 점, 2022년 판결의 사안은 피고인이 자신의 영업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피해자의 데이터를 수집한 것으로 보이고 이를 그대로 재판매하거나 서비스에 제공하지는 않은 것에 비하여, 대상판결의 피고인은 피해자 데이터베이스를 복제하여 이를 1/10 이하 가격으로 판매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피해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는 경우로 보아야 하는 점이 2022년 판결의 사안과 다르다고 판단된다. 대상판결은 정보공유, 경쟁제한 방지라는 2022년 판결의 고려사항이 발견되기 어려웠던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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