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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상표의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 – ‘레고켐’ 판결(대법원 2023. 11.16.선고 2020후11943판결)
2024.01.11
1. 들어가며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에 상응할 정도로 브랜드와 마케팅이 매우 중요해진 사회입니다. 소비자들은 비슷한 상품이나 서비스일지라도 상표에 따라 몇 배씩 비싼 값을 기꺼이 지불하기도 하고,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나타내며, 이를 선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상품의 특성을 떠올릴 수 있는 상표를 채택하거나,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상표를 사용하고자 하는 유인이 큰 것이 현실이나, 이러한 출원에 대해서는 상표법 상 상표 등록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상표는 ‘주지상표’와 ‘저명상표’로 구분하여 별도의 법적 효과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 중 ‘일반 공중의 대부분에게 알려진 저명상표’는 등록상표의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을 넘어서까지 타인의 등록을 저지시키는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저명상표의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의 등록을 허용할 수 없다는 최초의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이른바 ‘레고켐 판결’로서 본 뉴스레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사건의 경위
 
대전 유성구에 소재한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LEGOCHEM BIOSCIENCES)(이하 ‘레고켐바이오’)’는 2006년 ㈜LG화학에서 재직 중이던 연구원들이 퇴사하여 설립한 회사로서, 항암제, 항생제 등 바이오 신약에 관한 연구개발, 기술이전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위 회사가 상호를 ‘레고켐’으로 작명한 것은 화합물 작성기법 중의 하나인 ‘Lego Chemisty’라는 용어에서 시사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는 2015. 11. 사명을 연상케 하는 ‘LEGOCHEMPHARM’(이하 ‘대상상표’) 상표를 상품류 구분 제5류의 항생제, 항암제 등을 대상으로 하여 상표등록 출원하였고, 특허청은 2016. 4. 출원공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장난감 조립 블록 업체로 유명한 ‘레고(LEGO)’측에서 2016. 5. 출원공고된 상표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였는데, 1년 여에 걸친 공방 끝에 레고측의 이의결정이 받아들여져 상표등록이 거절되었습니다. 그러나 레고켐바이오가 2018. 11. 특허심판원에 거절결정불복심판을 청구하였고, 특허심판원은 2020. 2. 심판청구를 인용하여 대상상표의 등록을 허여하였습니다. 그러자 레고는 2020. 3.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였는데, 특허법원은 2020. 11. 특허심판원의 심결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레고켐바이오는 2020. 12. 21.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은 “출처의 오인∙혼동 염려는 없더라도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의 등록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저명상표에 화체된 고객흡인력이나 판매력 등의 재산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대상상표는 ‘레고’측의 선사용상표들이 가지는 식별력이 손상될 염려가 있다고 하면서, 레고켐바이오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본 뉴스레터의 대상판결). 
 
3.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의 의미와 관련하여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는 “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타인의 상품이나 영업과 혼동을 일으키게 하거나 그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라고 규정하는데, 전단과 후단을 나누어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전단(타인의 상품이나 영업과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경우)은 “저명한 상품 또는 영업과의 오인∙혼동으로 인한 부정경쟁을 방지하고 일반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저명상표와 혼동의 염려가 있는 상표를 부등록 사유로 규정”하는 반면, 후단(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타인의 상품이나 영업에 관한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경우)은 “일반수요자의 혼동이 없는 경우에도 저명상표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상표를 부등록 사유로 규정”하여 상표에 화체된 재산적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전단이 ‘공익적 목적’을 가진다면, 후단은 ‘사익적 목적’을 갖는다고 구분합니다.
 
전단은, 표장이 비유사하더라도 상표 구성의 모티브, 아이디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저명한 타인의 상표가 연상되는 경우와 상품이 전혀 비유사하더라도 경업관계 내지 경제적 유연관계가 인정된다면, 출처의 오인∙혼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상표법 상 거절이유, 무효사유로 작용한다는 점은 널리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후단은, 2014년 개정법에서 새롭게 도입된 것으로서, 동일∙유사 범위의 상표에 대하여 배타적 효력을 갖는 전통적인 상표법 이론에서 벗어나, 저명상표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상표의 등록을 저지하는 ‘저명상표의 희석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고켐 판결이 선고되기 이전까지는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이 직접적으로 문제된 대법원 판결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만, 학계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 규정의 해석례를 참고하여 제11호 후단 규정의 적용 범위를 정하자는 입장이었으며, 특허청 상표심사기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은 ‘약화(blurring)’와 ‘손상(tarnishment)’의 두 가지 유형에 따른 희석화를 모두 규제하는데, ‘약화’에 의한 희석화는 저명표지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업종이 전혀 다른 상품에 무단으로 이용하여 그 식별력이나 출처표시 기능 등을 감소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손상’에 의한 희석화는 저명표지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저질의 열등한 상품에 사용하거나 또는 불건전하고 반사회적인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명성이나 신용 등을 훼손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가방이나 귀금속류에 관한 저명표지를 식당이나 전자제품 등에 사용하는 것은 약화에 의한 희석화에, 유흥업소나 음란물 등에서 사용하는 것은 손상에 의한 해석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도양단식으로 ‘약화’와 ‘손상’을 구분하기 보다 ‘약화’와 ‘손상’ 양자를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희석화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 여부는 저명표지와 동일∙유사한 표지의 사용으로 인하여 저명표지의 단일한 출처표시 기능이 훼손되어 고객 흡인력이 감소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대법원은 “'식별력의 손상'은 '특정한 표지가 상품표지나 영업표지로서의 출처표시 기능이 손상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며, 이러한 식별력의 손상은 저명한 상품표지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영업표지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생긴다”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비아그라’ 사건, 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2다13782 판결).
 
‘비아그라’ 사건이 선고된 이후,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이 문제되었던 사건들이 다수 존재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버버리 노래방’과 ‘아웃백 모텔’ 사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법원은 전세계적으로 저명한 상표의 상품 또는 영업과 전혀 관련없는 대상에 사용하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의 ‘식별력∙명성 손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① ‘버버리 노래방’ 사건(대전고등법원 2010. 8. 18. 선고 2010나819 판결, 확정)
   전세계적으로 저명한 상표인 버버리를 노래방 업소의 상호로 사용하는 행위는 비록 서비스업이 동일∙유사하지 않더라도 ‘버버리’의 상품표지로서의 출처표시 기능이 손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버버리’라는 상호를 충청남도 천안시와 같은 중소도시에서 시민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노래방 업소의 상호에 이용하여 국내에서 고급패션 이미지로 알려진 ‘버버리’의 명성을 손상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② ‘아웃백 모텔’ 사건(특허법원 2017. 6. 29. 선고 2016나1691 판결,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전세계적으로 저명한 상표인 아웃백과 유사한 표지를 러브호텔 무인 숙박업소의 상호로 사용하는 행위는 아웃백이 구축한 가족 중심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패밀리 레스토랑으로서의 이미지와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 아웃백이 갖는 출처표시 기능도 손상시키는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레고켐 판결에서, ‘레고(LEGO)’라는 상표가 높은 인지도와 강한 식별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레고켐바이오가 신약 연구∙개발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반드시 ‘Lego chemistry’라는 용어의 약칭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반면, 레고켐바이오는 ‘레고(LEGO)’와의 연상 작용을 의도하고 대상상표를 출원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아,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실제로 저명상표와 사이에 출처의 오인∙혼동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상표의 식별력이 손상될 가능성만 존재하면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4. 시사점
 
지식재산권법 영역 중에서 표장에 대해 적용될 수 있는 법률은 상표법, 부정경쟁방지법, 저작권법 정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중 전통적으로 등록상표에 대해서는 상표법으로, 미등록상표 중 유명한 상표에 대해서는 부정경쟁방지법을 적용하고, 간혹 표장 자체에 디자인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면 저작권법을 병존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상표법은 등록상표와 동일∙유사 범위의 상표에 대한 등록배제효, 사용금지효를 갖는 반면, 부정경쟁방지법은 동일∙유사 영역에서 벗어나 혼동가능성,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할 가능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정경쟁방지법은 문제되는 사안의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한 해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등록상표의 경우 동일∙유사 범위에서 배타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 원칙이나, 저명상표의 경우에는 등록배제효를 보다 넓게 인정해 주어서 저명상표 보유자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구축한 신용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레고켐 판결은 저명상표의 식별력이 감소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비록 저명상표의 지정상품과 전혀 비유사한 지정상품이라고 할지라도 상표등록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저명상표에 대하여 상표권의 보호범위를 더욱 넓게 보는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특히 레고켐 판결은, 대상상표 지정상품인 항생제, 항암제는 ‘레고(LEGO)’ 상표의 지정상품인 장난감, 완구 제품과 대비하여 볼 때 저급하다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이미 2000년대 들어서 화합물 합성 기법의 하나로서 ‘Lego Chemisty’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왔다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기존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이 문제되었던 사례들과 비교하여 ‘식별력 손상’의 범주가 넓어졌음을 시사한다고 할 것입니다.
 
저명상표의 식별력을 손상시키는 상표의 등록을 배제하는 것은 저명상표 보유자의 신용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저명상표와는 전혀 무관한 상품에 사용된다는 사정만으로 등록을 배제하는 식별력 약화까지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를 적용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식별력을 약화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상표권 침해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저명상표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및 발생하였다면 그 손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불필요한 법적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유명한 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사용하여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거나 사업을 개시하는 행위를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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